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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시네마] ④ '뉴 할리우드'와 페이 더너웨이(中) - 우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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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영화는 사회와 문화, 역사를 반영하거나 투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지구촌에 일고 있는 페미니즘의 물결은 영화가 놓칠 수 없는 소재다.

물론 여성영화, 또는 여성주의 영화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 곳곳에서 여성영화제도 열리고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의 고발이든,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든, 가정과 어머니의 문제이든, 여성의 욕망을 다루든, 여성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오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우먼 인 시네마' 연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영화 속에 그려진 여성과 여성문제를 생각해본다. (편집자 주)   

[우먼 인 시네마] ③ ‘뉴 할리우드’와 페이 더너웨이(上)에서 이어집니다. 아울러 영화 <차이나타운(1974)>의 줄거리와 결말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1968년 작품인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주연 비키 엔더슨 역으로 활약한 이후, 페이 더너웨이는 한 동안의 휴식기를 가졌다. 잠시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뉴웨이브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몇 년간의 숨고르기 이후 출연한 작품이 바로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이었다. 결과적으로 폴란스키나 더너웨이 모두에게 영예가 된 작품이었다. 더너웨이는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인 에블린 역을 맡아 잭 니콜슨과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이전에 언급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의 찝찝한 결말과 마찬가지로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여주인공 역을 잘 소화했다는 호평을 들었다.

거북할 정도로 날것 그대로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던 ‘뉴 할리우드’의 시대상을 고려하자면 더너웨이가 주인공 역으로는 제격이기도 했다. 

폴란스키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감독은 아니었지만, ‘여성 캐릭터를 서사에 녹여내는 방법’에 한해서는 대가에 가까웠다. 세계를 묘사해낼 수 있다면 세계에 종속된 캐릭터성은 문제가 안 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연출법이었다. 이는 토마스 하디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테스>에서도 반복되는데, ‘세계에 의한 여성의 희생’이라는 소재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로만 폴란스키 (사진=연합뉴스)
로만 폴란스키 (사진=연합뉴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와 비교해보아도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 폴란스키는 여러 작품을 통해 비극적이었던 자전적 체험뿐 아니라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인간관계를 통해 시대와 국가, 그 속에서 보이지 않던 이들을 해부해냈다. 

<차이나타운>의 경우 ‘수사’라는 연출기법에 주목할 수 있다. 결말이 주어진 상태에서 인과과정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제이크(잭 니콜슨 역)가 사건의 내막을 쫓는 과정 그 자체이며, 여기에서 현실의 다양한 모순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제이크는 에블린에게 그녀를 둘러싼 의문점을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숨기는 그 여자아이가 누구냐는 위협에 에블린은 결국 그 아이가 ‘자신의 여동생이자 딸’임을 고백한다. 제이크는 충격에 휩싸였음에도 권력자를 둘러싼 비밀이 새어나간 이상 모두가 무사치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이들을 차이나타운으로 피신시킨다. 

하지만 에블린의 아버지인 노아 크로스(고전 누아르의 거장인 존 휴스턴이 직접 악역을 맡았다)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에블린은 경찰이 쏜 총에 눈을 맞고 사망, 남겨진 애블린의 여동생이자 딸은 결국 노아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꿈도 희망도 일체 남기지 않는 결말에 뒷맛이 씁쓸해지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위 작품의 결말을 놓고 페미니즘을 논하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세계의 인식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여성은 세계의 모순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늘 “‘말할 수 없는 여성’들이 있다는 현실에 주목하라”고 주장했고, 폴란스키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듯 그러한 여성들은 어디에서든 존재해 왔으며 끝내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장면 (사진=연합뉴스)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장면 (사진=연합뉴스)

필름 느와르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비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고전 느와르에서 여성은 당시의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이며,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뉴 할리우드는 변화한 세상을 반영했고, 전문가들은 “필름 느와르에서의 팜므파탈은 전통적 성과 사회적 젠더의 충돌을 의미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에블린의 극 중 역할은 단순 팜므파탈로 치부하기 어려운 점도 많았다. 

이 작품이 고대 그리스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연상케 한다는 비평도 마찬가지다. 에블린은 사회로부터 주어진 승계와 훈육의 부담을 놓고 갈등한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딸 역시도 그녀와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눈에 총을 맞고 사망한 그녀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하다 끝내 두 눈을 빼버린 오이디푸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딸 역시 두 눈이 가려진 채 할아버지에게 끌려가게 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는 더욱 배가된다. 출산에 대한 불신을 떨치고 입양을 자임하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출산의 부인에 기초한 입양이라는 시련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멕베스> 등의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워낙 고전작품과 비극에 심취한 폴란스키였기에 이러한 해석은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개성넘치는 더너웨이와 폴란스키의 만남은 이렇듯 걸작을 탄생시켰지만, 사실 둘 사이의 궁합은 무척 좋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폴란스키는 틈만 나면 “그때 더너웨이가 눈이 뻥 뚫리며 죽었지요”하고 더너웨이를 조롱할 정도니 앙금은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치 않았다.

워낙 폴란스키가 유명한 성범죄자이기도 했으나, 더너웨이에 대한 이미지 역시도 그리 좋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출세작이었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연 워렌 비티가 더너웨이의 캐스팅을 그리 반기지 않았던 것은 이미 유명했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제작진도 늘 더너웨이의 까달스러움에 고개를 저었으며, <차이나타운>의 제작자도 당초 폴란스키에게 “더너웨이는 성격에 문제가 있으니 제인 폰다를 캐스팅하라”고 권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역일수록 개성이 넘치는 배우가 제격”이라며 더너웨이를 캐스팅한 것도 결국 폴란스키였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그럼에도 둘은 촬영 내내 으르렁거렸다. 크랭크인이 떨어진지 일주일 만에 둘은 모두 앞에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다투기 시작했다. 성격이 괴팍하기로는 만만치 않았던 폴란스키가 불을 밝히겠답시고 더너웨이의 머리카락을 뽑았던 것이다. 더너웨이가 길길이 날뛴 것은 당연했고, 그녀는 촬영 막바지에서는 오줌을 컵에 담아 폴란스키에게 뿌리기까지 했다.  

이전까지는 업계에서 스태프들에게 무척 까탈스럽고, 동료들과 갈등을 유발하곤 했다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차이나타운> 이후로는 그 소문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졌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변기를 내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여배우’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뉴 할리우드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고, 더너웨이를 주연으로 쓰는 작품은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늘 대박을 거두곤 했다. 그녀의 캐스팅을 반대했던 <차이나타운>의 제작자 로버트 에반스도 결국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는 “모든 자질을 갖춘 배우”로 인정했을 정도다.

이후 더너웨이는 <차이나타운> 이후 브라운관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뉴 할리우드에서의 변화된 여성상이었고, 결국 그녀는 2년 후 시드니 루멧을 만나 배우로서의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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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20 at 08:3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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